에로게의 근본 문제를 뛰어넘은 슈몬 유우
- 마츠나미 소이치로
1. 처음에
슈몬 유우가 가진 라이터 특성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혼카토리(本歌取)」에 있다. 「혼카토리」는, 와카(和歌)의 작성기법중 하나로, 뛰어난 혼카를 자신의 작품에 집어넣어 곡을 만드는 기법인데, 요즘에 와서는 그런 행위를 일반적으로 「패러디」라고 불리우며, 경의의 마음을 담는 경우에는 「오마쥬」라고 불리운다.
하지만 슈몬 유우의 경우, 「혼카토리」라는 표현이 적당하다고 생각된다. 그건, 작품의 약 반 정도를 혼카로 채우는 「혼카토리」와 마찬가지로, 작품 안의 문제, 그 해결이 가진 속뜻, 결국에는 캐릭터의 성격조차도 인용되는 작품에게 맡겨버리는 그 태도가, 슈몬 유우의 작품들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탐욕스럽게 인용 작품을 자신의 작품 속에 집어넣는 모습도 그렇지만, 동시에 인용 작품을 신화나 민화같은 오래된 작품을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도 「혼카토리」의 그것과 맞아 떨어진다.
슈몬 유우의 작품에 관한 정신은, 대부분 그런식으로 틀이 잡혀 있지만, 에로게 중 최신작인 『분명, 맑은 아침빛보다도,』(이하 『아사이로』)는, 지금까지 슈몬 유우가 만들어 온 「이미 존재하는 이야기와 자신의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연결짓는 기술」을 다중적으로 사용, 성공한 작품으로서, 한 획을 긋고 있다.
왜냐하면, 『아사이로』가 귀속되어 있는 에로게라는 제품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의 해결도, 마찬가지로 같은 범위 안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Kanon』의 문제」인 것이다.
『아사이로』가 발표된 것은, 2009년, 즉 1999년에 『Kanon』이 발표된지 10년 후의 이야기다. 이 10년이라는 기간은 아무래도 한 문제가 해결되는데 적당한 기간이었던 모양이다.
그렇기에 더욱 일련의 흐름이 2010년에 매듭지어지는건 당연하다고 여겨지지만, 그러면서도 『아사이로』가 가진 범위를 명확하게하는 『아사이로』론은, 내 짧은 지식으로는 전혀 없다고 여겨진다.
아니, 그렇기는 커녕 『아사이로』가 그 때, 잘라내 버린 부분을 가지고 졸작이라고 평하는 이야기들이 일부에서는 상당히 많이 퍼져있다. 그에 대해, 난 단호히 이견을 제시한다.
왜냐하면 『아사이로』의 결론은 하나이며, 다른 해석을 용납하지 않으니까.
<중략>
본 논집의 형이라고 누나라고도 할 수 있는 평론집에서 자주 말해왔듯이(역주 - 본 논집의 제작자인 then-d는 원래 key계열 논집이 전문), 『ONE ~빛나는 계절로~』(이하 『ONE』), 그리고 그 정신을 이어받은 『Kanon』은 제작측이 「영원의 세계」를, 「기적」을 고착시키지 않았던 것이, 그 팽대한 논고(論考)를 낳는 원천이 되었다.
정확하다는 게 없던 상황에, 많은 사람이 모여, 이야기를 하고 교의를 두텁게 한것은 확실히 「기적」이라고 할만 하다. 하지만 『아사이로』는 그렇지 않다.
기획·각본·감독·프로듀서를 슈몬 유우가 혼자서 제작 총지휘를 했던 본 작품은, 구석구석까지 그 사상 밑에 놓이게 되어, 다른 사람이 해석을 추가할 여지가 없다. 그 탓에 평가를 낮추는 사람도 있을것이다.
분명히 결점이라고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이긴 하다. 하지만, 그 본질을 보았을 때, 그것을 채우고도 남을 매력을 나는 느꼈다. 그렇기에 더욱 『아사이로』의 본질이 뚜렷해지지 않은 지금의 상황이 염려되어 결론을 말해두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아사이로』를 읽는 법은 단 한 가지다, 라는 이 태도는, 볼손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그 비판은 가볍게 받아 들일 수 있다.
단, 당신이 본론을 읽고 그렇게 느꼈다면, 「진짜 정답」을 말해주었음 한다. 난 그걸 원하니까.
슈몬 유우가 00년대의 마지막에 내놓은, 기존의 에로게를 뛰어넘는 한가지의 방법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믿고 있으며, 그 업적이 인정받게 된다는 건, 한 명의 팬으로서 더할 나위없이 기쁜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