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번역으로 1장은 끝입니다. 프롤로그, 에필로그 모두 합쳐서 총 6장 구성인데 2장이 제일 분량이 많은 만큼 제일 오래걸릴듯. 뭐 죽기전에만 다 하면 되는거 아니겠습니까 허허.
interlude 1
소독약 냄새가 자욱한 실내에 두 남자가 있었다.
긴 백의를 입은 남자는 컴퓨터와 마주하고 있고, 청년은 벽을 등에 지고 서 있다.
「몇번이나 말하지만 여긴 금연구역이야」
「아……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버릇이라」
청년은 불을 붙이려던 담배를 가슴 주머니에 넣는다.
「그런데 선생님, 부탁드린 데이터는?」
「음, 여깄네. 역시 자네 예상대로 환자는 이 도쿄에 집중되어 있어」
「역시. 전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는듯 하면서도, 지도에 표시를 해보니 도쿄가 중심이라는게 보이는군요」
「특히 시계열(時系列)의 데이터가 재밌지. 20년전까지는 거의 국내에서만 발생하던게, 그 이후로는 미국, 유럽의 주요도시에 순차적으로 퍼지고 있어」
「도쿄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감염증(感染症), 이라고 봐도 되는걸까요?」
「아니, 그렇게 단정하기엔 장소도 시간도 너무 산발적이야. 그리고 발전도상국에서의 발생이 극단적으로 적다는 점도 신경쓰이는군」
청년은 남자의 어깨너머로 모니터를 들여다본다. 일본, 미국, 유럽주에 붉은 점이 집중되어 있다.
「……작위적이라고 보십니까?」
「자네의 가설이 옳다면, 말이지」
「――아리스 재단」
「확실히 아리스 재단의 본부는 도쿄에 존재하고, 아메리카와 독일에도 지부가 있지. 하지만 그건 환자가 이 나라들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인거 아닌가? 재단의 목적은 아리스 증후군 환자의 복리후생이니까 말일세」
「이 시계열의 데이터에 아리스 재단의 지부가 만들어진 시기를 겹치면 어떻게 됩니까?」
백의를 입은 남자가 키보드를 두드리자 모니터 위에 붉은 점의 분포가 변화한다.
「그게 이건데……뭐 신경쓰이는 거라도 있나?」
「여기, 독일에 지부가 만들어진 시기. 이 시점에서는 아직 유럽에서의 발생 건수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재단이 독일에 지부를 세울 이유가 없죠」
「재단이 직접 아리스 환자를 만들어 낸다……이건가?」
「그 가능성은 데이터가 충분히 보여주고 있잖습니까, 선생님」
백의를 입은 남자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모니터에서 고개를 뗀다.
「왜 자네는 그렇게까지 아리스 증후군에 집착하는 건가?」
「아리스 증후군에 집착하는게 아닙니다. 단지, 재단에 흥미가 있는것뿐이죠. 그만큼 전세계에 거점을 두고 있으면서도 그 주요 재원(財源)이 밝혀지도 않았습니다. 아마 음지에서 상당한 규모의 사람·물건·돈이 움직이고 있을 겁니다」
「재단의 부정을 폭로할 셈인가?」
「이용할 수 있는건 이용한다, 그뿐입니다」
「――사이온지 그룹을 위해서, 인가」
「자신을 위해, 그리고 선생님을 위해서, 입니다」
청년은 조용히 웃는다. 그것이 스스로를 비웃는 거라는 걸 알아챌 수 있는건, 여기있는 백의의 남자뿐일 것이다. 아마, 본인조차도 모르고 있을테니까.
「그러고보니 얼마전, 이곳에 아리스 환자가 왔었지」
「호오, 이 대학에도 있단 말입니까. 하지만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잖습니까. 요즘 환자수가 급격히 증가하는 모양이니」
「단순한 아리스 환자라면 말이지. 하지만 얼마전에 찾아온건, 무려 그 토죠 헤이하치로의 손자인――」
움찔, 하고 청년의 눈썹이 반응했다.
「……생각났다」
「응? 무슨일인가?」
「아뇨……. 그 아리스 환자라는건, 토죠 모미지를 말씀하시는 거죠?」
「음. 이 대학에 다니고 있다는 이야긴 들었지만 설마 그녀도 아리스 증후군일줄은」
「그렇다면 재단의 뒤에 있는게 토죠 콘체른이라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겠군요」
「아무리 그래도 그건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 아닌가?」
「하지만, 조사해볼 가치는 있다――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청년은 가슴 주머니 안에 손을 넣는다.
「이봐, 여긴 금연이라고……」
「이용할 수 있는건 이용한다, 란 말입니다」
청년이 주머니에서 꺼낸건 장식이라곤 하나 없는 검은 휴대전화였다.
「토죠 모미지와 제게는 접점이 있습니다. 이걸 이용하지 않을 순 없잖습니까, 선생님」
익숙한 손놀림으로 메일을 쓰기 시작한다. 그 눈은, 얼음처럼 차갑고 날카로웠다.
그걸 보고, 선생님이라고 불린 남자는 한숨을 쉬었다. 마치 인생에 지친 노인처럼 깊고, 천천히.
「자네도 참 사서 고생을 하는구만, 사이온지 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