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슬슬 속도 좀 붙여볼까 합니다. 분량이 많은 책도 아니라 꾸준히 하면 최소한 아네모이 1권보단 빨리 끝나지 않을까 합니다.
...만 사실 이거보다 더 우선해야될게 따로 있어서 말입니다. 그래도 확실히 슈몬보단 고선생이 번역하는 입장에선 상당히 고마운 텍스트라 아네모이보단 속도가 상당히 많이 빨라지네요.
「아가씨, 학교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차창 너머로 낯익은 사이호우(西邦)대학의 건물을 눈 앞에 보이자, 모미지는 그제서야 마음이 놓인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까지 삼십분동안, 죠지의 끝없는 여동생 자랑을 듣느라 지칠대로 지쳐가고 있었다. 주인을 제쳐놓고 가족 자랑에 신이 나 있는 집사라니 들어본 적도 없다.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 저 대학 문을 넘으면 그곳은 모미지의 영역, 토죠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치외법권의 땅이다. 적국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이온지 그룹 산하의 대학에 일부러 입학한 이유도 그거다. 이걸로 당분간은 집에 관한 걸 잊고 자유를 손에 넣을 수가 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캠퍼스가 집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는 것도 별 것 아닌 일이었다. 죠지가 바래다 주고 데리러 오게 된 건 큰 오산이었지만, 그건 2년전 대학 첫날에 지하철에서 졸다가 사이타마까지 가버린 모미지의 잘못이다. 왜 도쿄의 지하철은 그렇게 어려운 걸까. 애당초 역을 찾기가 너무 힘들다.
「이대로 문학부쪽으로 향하겠습니다. 1교시 교실은 8호관이셨지요?」
「잠깐, 여기면 된다니까! 시커먼 리무진이 캠퍼스를 달리고 있으면 다들 어떻게 생각할지……」
「어딘가의 부잣집 따님이라고 여기겠지요」
「그러니까, 그게 싫다구」
「겸손하시긴. 사실이잖습니까」
「저기 있지, 그게 얼마나 성가신 사실인지 알고 있어? 그 덕분에, 중학교에서도 고등학교에서도 다들 날 특별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단 말야. 난 모두가 원하는 아가씨를 연기해야만 했고. 제대로 친구도 만들지 못했었지」
하지만, 이 대학에서는――.
「죄송합니다. 제가 서민 출신이다보니, 그만 말 실수를……」
「괜찮아, 이해했으면」
「하지만, 그것과 이건 다른 문제입니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리무진은 정문을 지나치고 있었다.
「아아아아아……」
「언제 어느 때, 못된 녀석들이 아가씨를 노리고 달려올지 모릅니다. 확실히 교실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아아……다들 보고 있어……싸늘한 눈으로……」
「그런데 아가씨, 대학에서는 친구를 사귀셨습니까?」
「이 상황에서 그걸 묻는거야? 그래, 안 생겼어. 하나도! 전혀!」
입학한지 벌써 2년――모미지에게는 아직 친구라고 부를만한 친구가 없었다. 대학생활도 이미 후반전, 이대로는 결국 대학에서도 친구를 만들지 못하고 끝나버린다.
지금까지는 활약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휴대폰을, 꼬옥 쥐었다.
사실은, 모미지도 알고 있었다. 토죠가라는건 상관 없다. 이것만큼은 모미지 본인의 문제인 것이다. 모미지는 조금――아주 조금, 특수하다고 불리는 인종이었다. 그리고, 그 역경을 뒤엎을 만한 용기를 갖고 있지 않았다. 알고 있다……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괜찮아, 오늘은 비밀병기를 준비해 왔으니까. 친구 백명――은 무리겠지만, 두세명은 만들고 말거야」
「하하하, 성과를 기대하겠습니다」
――분명히 괜찮을거야, 왜냐하면, 이곳에는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까.
모미지는, 자신들을 돌아보는 학생들 무리를 둘러보고는, 기대에 가득찼다.
봄――대학이 신입생으로 넘치고, 갑작스레 활기를 띄는 계절이었다.
§ § §
「신입생 모집중입니다!」
드넓은 사이호우 대학의 캠퍼스 안에서도 특히 사람이 많이 지나는 정문 앞에서, 모미지는 얼굴에 어울리지 않은 큰 목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시간은 오후 4시쯤, 수업을 마친 1학년생들이 일제히 정문에 몰려드는 시간이다. 주위에서는 유도부라던가, 마술 애호회라던가, 문예 동아리라던가가 마찬가지로 소리를 높이며 전단지를 나눠주느라 정신이 없다.
하지만 기분탓인지, 모미지 앞에서 발을 멈춰주는 1학년생은 얼마 없다. 한번 슬쩍 보고 가거나, 그대로 지나가거나, 무시……아니지 아니, 그까짓 것. 이런데서 포기할까보냐.
「전단지만이라도 괜찮으니까, 받아주세요!」
눈 앞을 지나가는 여학생에게, 강요하듯이 전단지를 건넨다.
「부탁드려요!」
「아……저기……」
좋아, 멈춰섰다. 생긴걸 보아하니 밀어 붙이면 넘어가게 생겼다. 여기선 밀고 밀고 밀어버리자.
「저기, 1학년이세요!?」
「아……죄송해요, 2학년이에요」
「학년은 상관없어요! 할 마음만 있으면 괜찮습니다!」
여기서 놓치면 끝이다.
「그치만 저, 이미 다른 동아리에――」
「양다리도 괜찮아요! 활동일은 사정에 맞춰드릴게요!」
「저기, 그치만……」
반드시 입부 시켜야 해.
「우선은 이쪽의 용지에 이름이랑 메일 주소를. 절대로 권유 이외의 용도로는 사용하지 않을거에요. 이름, 어떻게 돼요?」
「……호시노(星乃), 아카리(明香里)……」
「호시노상이죠? 그리고 메일 주소는――」
반드시 반드시, 친구가 될거야.
「근데……여기, 무슨 동아린가요?」
왔다.
여기까지 왔으면 이긴거나 다름없지.
모미지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
「――우주인 탐색부!」
기억은, 여기서 갑작스럽게 끊어진다.
「우주인은 존재한다구요!」
자랑스럽게 선언했던 그곳은, 하얀 침대 위였다.
「어라? 여기 어디지……?」
「아, 겨우 일어났네. 기분은 어떠세요, 선배?」
침대 옆에 있던 의자에 앉아 있는 건, 생글생글 웃는 표정의 여자아이. 이름은 아까 들었던――호시노 아카리다.
새삼스레 방을 둘러본다. 하얀 벽에, 하얀 커튼. 잘 모르겠지만, 대학의 양호실이라던가겠지.
「나……또 날아갔었구나」
「……날아?」
아차.
「아, 으으응. 단순히 어지러웠던 것 뿐이야. 나 빈혈기가 있는 모양이라, 현기증이 자주 나거든. 대학에서 이런 건 처음이지만」
「그랬구나. 갑자기 쓰러져서 깜짝 놀랐어요」
「호시노상이 여기까지 옮겨준거야?」
「전 아카리라고 부르셔도 돼요. 다들 그렇게 부르니까」
「난 3학년 토죠 모미지」
「그러니까……네, 우주인 탐색부의 토죠 선배」
기묘한 대면이었다. 침대 위와, 의자 위. 아아, 더 이상 이 사람과는 평범한 친구가 될수는 없겠지, 라는 체념이 모미지의 가슴을 스친다.
모미지는 가끔, 갑작스레 정신을 잃는 경우가 있다. 그 시간은 많아봐야 1~2시간. 그 동안의 기억은 전혀 없다. 그 현상을 모미지는 『난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마치 시간이 날아가버린듯한 착각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진 되도록 남에게 알려지지 않게 살아왔다. 그런데, 하필이면 처음 만나는 여자아이의 앞에서…….
「선배. 저기, 우주인 탐색부라는게 뭔가요?」
이제 될대로 돼라, 라는 기분이었다.
「우주인을……찾는거야」
「아하……」
태연한 아이였다. 그녀의 그 모습을 보고 자신의 모친을 떠올려, 모미지는 화가 났다.
「뭐 할말 없어?」
「네?」
「정말로 우주인이란걸 믿는거냐던가, 어딜 어떻게 찾을거냐던가」
계속, 그런 소릴 들어왔다. 모미지가 우주인의 이야기를 할때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어쩌면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은 모미지를 바보 취급하던가 , 사방으로 도망치듯 사라지던가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모미지의 주위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모미지는 믿고 있었다.
――우주인은 존재한다고.
「나를……부정하지 않는거야?」
「그치만, 그런 동아리 아닌가요?」
「너, 우주인을 믿어?」
「으~음, 굳이 따지자면 믿진 않아요. 하지만, 있으면 멋있을거 같아요」
「그, 그럼――」
입부 해줘. 그리고 나와 친구가 되어줘.
그 말이 나오기 전에, 문이 열렸다.
「어, 정신이 든 모양이군」
구깃구깃한 백의를 입은 남성이 방으로 들어온다. 실제 나이는 아직 중년 후반일테지만, 흰머리가 섞이기 시작한 머리는 그의 외견상의 나이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사람 좋아보이는 웃음도 역시, 그의 실제 나이를 알기 어렵게 하고 있다.
「선생님, 어서오세요. 선배가 조금 전 눈을 떴어요」
「미안하군, 자리를 지키게 해서. 그러니까」
「전 호시노 아카리에요. 이 사람은, 토죠 모미지상」
「토죠……?」
가늘던 눈이 살짝 떠지더니, 시선이 모미지에게 옮겨진다. 자신도 모르게 가슴 주변을 이불로 가려버렸다. 그런 모미지의 모습을 오해한건지, 아카리는 웃으면서 설명을 덧붙인다.
「여긴 대학의 보건 센터, 그리고 저 사람은 의사 선생님이세요」
「고맙네 아카리군. 뒤는 내가 맡지」
「네. 그럼 선생님, 토죠 선배, 실례할게요」
「……아……」
모미지의 손이, 자신도 모르게 아카리의 옷을 잡고 있었다.
「저기, 무슨 일인가요?」
「그러니까……동아리……」
지금 이 손을 놓으면, 이제 두번다시 만날 수 없다――그런 기분이 들었다. 기묘한 만남이었지만, 그래도 이건 모미지에게 있어서 유일한 만남이었다.
매달리는 듯한 모미지의 시선에, 아카리는 생긋 웃으며 답한다.
「선배, 지금은 안정을 취해야 돼요」
「괘, 괜찮아. 단순한 빈혈이니까」
「그래도요. 눈을 뜬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요」
「그럼……아카리상도 여기 있어줘」
모미지는 지금 무슨 말을 하는건가 하고 내심 자신에게 어이없어 하면서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기서 헤어진다니, 그런건 싫었다.
「조금만이에요?」
꼭 쥔 손에, 따스한 손바닥이 겹쳐진다. 그건 긴장된 모미지의 마음을 풀기에 충분했다.
봄의 양기와 창문에서 들어오는 햇살 속에서 모미지는 천천히 꿈 속에 빠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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