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어두운, 숲이었다.
눈 앞에 뭔가 붉은 것이 떨어져 간다. 후드득 후드득――아니, 하늘하늘이다. 등 뒤를 쫒아오는 어둠.
이제, 바로 근처, 어깨까지 따라 와 있다.
난 달리고 있었다. 두 눈을 꼭 감고, 무서운 것, 싫은 것을 보지 않게, 그저 달리고 있었다.
이 세상에는, 어둠이 있다. 장농의 그림자, 계단의 층계참, 나무 구멍 속, 여기저기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숨어 있다. 그리고, 만약 그곳을 들여다 본다면, 그 자리에서 어둠에 빨려들어가 버린다.
그래서 나는, 두 눈을 꼭 감고 달려왔다. 그렇게 해서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부터 계속 도망쳐 왔다. 자신의 몸을 지켜왔다.
계속 그래 왔다.
「――꺅」
쿵, 자그마한 충격. 이마에 열을 느낀 것과 동시에, 지면에 등이 닿았다. 후드득 후드득――아니, 하늘하늘 얼굴 위로 내려오는, 붉은 것. 그건 나와 같은 이름의 것이었다.
「……단풍잎(もみじ)」
약간 어두운 숲이었다.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저녁 햇살은 단풍잎과 맞물려, 옛날 이야기의 무대처럼 세계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응? 뭐야 넌」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어디에서……?
하늘에서.
「못보던 얼굴인데, 이 집안 사람이 아니군」
붉은 잎 사이로, 소년의 얼굴이 불쑥 들여다 보고 있었다. 나무라도 오르고 있었던 걸까? 단풍나무의 가지는 가늘어서 도움이 되진 않지만, 그 소년의 몸 역시, 가지가 지탱할 수 있을 정도로 가늘고 어렸다.
「너, 누구야?」
그러니까…….
「……모미지」
소년은 주변에 흩날리고 있는 붉은 잎을 둘러보며 눈을 깜박거린 후, 골치 아프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그렇군. 넌, 토죠 모미지(東条紅葉)군. 이런 곳에서 뭘 하고 있는거지?」
「결혼……」
「뭐? 너무 비약이 심한데」
「정략결혼……」
「확실히, 대강 맞긴 하지만」
그래, 난 『정략결혼』을 하기 위해서, 이곳에 왔다. 아무도 확실히 알려주진 않았지만, 틀림없다.
「그래서, 왜 네가 여기 있는건데?」
물론, 도망치기 위해서다.
「오늘은 약혼자랑 첫대면 하는 날이잖아, 토죠 모미지」
「어떻게……」
어떻게 내 이름……그렇게 말을 하려던 때였다.
――빠각.
그런 가벼운 소리와 함께 소년이 올라타고 있던 가지가 부러져, 대량의 단풍잎이 내 얼굴로 떨어져――.
「우, 우왓!?」
소년이 내려왔다.
「――――――!?」
「아……아야야……」
소년의 머리는, 가슴 속. 찰랑거리는 짧고 검은 머리는, 내 손가락 사이. 가슴이 닿아, 찌잉하고 금속의 감각이 느껴진다.
소년이 앉아 있던 장소의 단풍잎은 가지채 사라져, 그곳만 붉은 하늘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몇줄기의 빛이, 나와 소년의 위를 비추고 있다. 마치, 햇빛(木漏れ日*주1) 같았다.
뒤늦게 소년의 등에 하드 커버로 된 책이 떨어진다. 퍽, 하는 소리가 들렸으니 무척 아팠을게 틀림없다. 타이틀은 『일반상대성이론』……못 읽겠다.이 남자 아이가 읽던 책인걸까. 근데 왜 일부러 나무 위에서?
「칫……되는게 없는 날이군」
힘겹게 중얼거리면서, 소년이 고개를 든다. 사르륵, 손가락 사이로 머리카락이 빠져간다. 소년의 어깨 너머로 새어들어오는 저녁 햇살이 비추어져, 볼이 붉어지는걸 알 수 있었다.
첫인상은 『눈매가 사납고 안경을 쓴 남자 아이』였다. 이런 어두운 숲에서 책을 읽고 있으니까 눈이 나빠지는 거다. 게다가, 역시 가늘다. 이렇게 내 위에 올라가 있어도 전혀 무겁지가 않다.
분명 편식만 하는게 틀림없다.
「미안. 다친데는 없어? 모미지」
「어, 어떻게 내 이름……?」
이번엔, 물어봤다.
「뭐야, 아직도 모르고 있던 거냐」
눈부시기만 한 햇살과, 자그마한 남자 아이.
「난 사이온지 아키라(西園寺明). 네 약혼자다」
――지금부터 10년전.
미야우라(宮浦)라는 이곳에서 훨씬 남쪽의 어느 마을에서 생긴 일이었다.
*주1 - 코모레비.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
아키라 말투를 살리는게 의외로 어려워서 그냥 대충 쑤셔박았는데 영 맘에 안드네요.
뭐, 계속 할 예정도 아직 없으니 상관 없.....나?
만약에 계속 한다 쳐도 아네모이가 끝난 후에나 가능할테니 역시 무리일듯.
아, 앞의 감상글에서 적는걸 깜박했는데, 코모레비의 주인공은 모미지, 카게로우의 주인공은 미치유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