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썼던 글이 코이카케 체험판 감상글, 제품판 기준으로 치면 왕코 리리 감상글이 마지막이니 거의 3년만에 쓰는 글.
더구나 신작을 리얼타임으로 클리어한게 언제인지 거슬러 가면.....
「비는 싫어 하지만 좋아」
싫어하는 건, 몸을 차갑게 적시니까. 아침 청소를 어렵게 만드니까. 좋아하는 건, 둘이서 함께 있을 수 있으니까. 그 자그마한 우산으로, 좁고 차가워도 몸을 기대고 있을 수 있으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오빠와 말이다.
네코네코 소프트의 신작, 루리의 카사네 입니다. 카사네는 뭐 딱히 적당히 옮길만한 단어가 통 안보여서 그냥 카사네로. 한자 표기는 習ね.
위에도 적었듯이 굉장히 오랜만에 써보는 게임 감상글인데, 아마 올해 처음해보는 신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제 기억에는 뭐 딱히 다른걸 한 기억이 없으니까요. 올해 기대작도 사실 이 작품 하나였고 란스10은 결국 내년으로 넘어갔으니 이래저래 올해는 이 작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뭐 구작 재탕이야 가끔씩 하긴 하겠지만서도.
이번 작품은 타이틀에도 적혀 있지만 히로인 중 한명인 루리에 올인하는 타입의 작품입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RURI 루트가 이 작품의 핵심. 또 다른 가능성을 그리고 있는 RURI/RURI쪽 루트는 제 기준에서는 완벽한 사족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양쪽 루트의 온도차가 굉장히 심한 수준. 차라리 이 루트 하나만 미들 프라이스로 따로 발매하는게 오히려 낫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다루고 있는 내용도 같은 라이터의 동인작품인 나르키소스와 굉장히 흡사한데다가 심지어 분량면에서 봐도 비슷한 수준이라...아니 오히려 나르키소스3로 비교하면 그쪽이 조금 더 많을수도.......
챤넬 스레(물론 네코네코 소프트 스레입니다. 이번엔 아예 작품별 스레가 없습니다. 거기다 브랜드 스레도 파리 날리는중)에서 유일하게 들어왔던 작품 감상 레스중에 하나가 '나르키소스로 울었던 놈이라면 반드시 운다'라는 레스가 하나 있었는데 딱 그 수준.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그 수준인데, 개인적으로는 아예 나르키소스 신작을 플레이 하는 기분으로 했습니다. 원래 나르키소스 시리즈 좋아했으니까.
……만약,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어디부터 되돌려야 할까? 어디부터라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남들은 "불행"이라고 부를지도 모르지만……
단 둘 뿐인 세계에 있는 행복은, 다른 누구도 아닌, 두 사람이 정하는 걸지도 모른다.
이야기 중반부터 우울한 전개로 들어가는 RURI 루트와는 조금 다르게 RURI/RURI 루트는 조금 밝은 편. 밝은 편이라곤 하지만 뭐 어느정도 시리어스 파트도 있고 다른 히로인들 루트와 비슷한 정도? 이쪽을 먼저 플레이 한 후에 RURI로 넘어간다면 모르겠지만 RURI 루트를 플레이 한 후에 이쪽으로 넘어온다면 음........
아, 루리는 조금 특이하게 에로를 RURI/RURI 루트 2주차에 모조리 몰아넣고 있습니다. 딱히 볼 생각이 없다면 아예 통째로 다 날려버려도 되는 구조인데....반대로 오히려 이게 목적인 사람(?)에게는 굉장히 번거로운 상황이라 대체 왜 이렇게 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빼버릴거라면 차라리 그냥 오마케에 넣는게 나을텐데 말이죠. 어차피 다 개그에 가까운 에로씬뿐이라 실용성은 제론데.
「지금 이대로도 좋은데 말야」
「계단에서 켄지군을 기다리고, 둘이서 쥬스를 마시고, 이야기를 하고……」
「나쁘지 않지」
「……응, 나쁘지 않아」
「응……앞으로도 나는, 계속 기다릴거야」
앞으로도 그 긴 계단을 오르고, 몇번이나. 단지, 지금의 일상을 이어가기 위해.
언제부턴가 시작된 우리의 일상. 둘만의 시간을 지키려고 하는 유라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의외로 개별 루트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플레이 전부터 사실 이쪽은 완전히 포기하고 있었던 탓인지는 몰라도 꽤 즐겁게 플레이 한 편. 특히 소꿉이(?)였던 유라가 꽤 괜찮았는데, 캐릭터 디자인 면에서도 제일 마음에 들었던게 이쪽. 주인공으로 인해 성격이 변해가는 과정이 쭉 다 나온다는게 고득점. 시리어스도 그 '변화'에 대한 내용이었다는 것도 좋았고 무엇보다 출근하는 주인공을 배웅하고 퇴근하고 돌아오는 주인공을 기다리는 매일을 소중히 하는 소꿉이라는 부분이 특히 좋았던 부분.
이이치코쪽도 나쁘지는 않았는데 주제가 주제인지라 취향을 좀 심하게 타지 않을까 싶습니다. 당장 소재 자체가 뭐랄까, 최소 대학생 이상은 돼야 조금 공감할까말까한 내용인지라....근데 보통 이런 소재라면 이야기를 굉장히 무겁게 끌고 가야 좀 어울리는 법인데 캐릭터가 캐릭터인만큼 너무 가벼웠다는게 좀 아쉬운 부분. 이래저래 히로인이 3명뿐인 작품인데도 가장 겉돌고 있는 캐릭터라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나리오 외에 아쉬운 부분을 꼽아보자면 역시 버그 투성이의 게임. 버그라고 하긴 좀 애매한 부분이긴 한데 스크립트 자체가 좀 엉망진창인 부분이 많이 보이는 편입니다. 초안 단계의 스크립트를 그냥 갖다 때려박은 건지 캐릭터 이름에 '히로인'이라고 나오질 않나 텍스트는 켄지인데 음성은 '아나타'라던가 하는 식으로 안 맞는 부분이 굉장히 많은 편. 오타야 뭐 말할것도 없고 루트가 다른데도 비슷한 장면에서는 스크립트를 그대로 붙여넣기 한건지 오타도 똑같이 나오고.....그럴거면 스킵이라도 가능하게 해주던가! 그 밖에는 좀 치명적인 버그로 유라 루트 후반부의 CG가 감상란에 등록이 되지 않는 버그. 이건 좀 웃기게도 '패치를 하면' 발생하는 버그라 패치 없이 하면 별 문제 없이 등록이 되는 모양. 오프닝 공개~체험판 공개~마스터 업까지 계속 일정이 밀렸던걸 보면 여유가 없기는 했을텐데.....그래도 이건 좀...
이래저래 버그가 인상적이었던 게임이긴 했지만(?) 다른 모든 단점을 다 씹어먹을 정도로 루리쪽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었으니 아무래도 좋아졌습니다. 앞에서도 했던 소리지만 나르키소스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충분히 할 가치는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른거 다 집어치우고 RURI 루트만 하고 치워버려도 될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