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작가 트위터에 지난 12월 24일에 올라왔던 내용이었는데, 당시엔 너무 길어서 귀찮다고 안 읽고 있다가 오늘 읽어보니 꽤 재밌는 내용이라 옮겨봤습니다.
제 경우는 이 양반 작품은 '내가 사는 의미'도 그렇고 읽어본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이 글을 읽으면서 어느정도 흥미가 생겼습니다. 아마 완결이 나지 않은 상태였다면 당장 사서 읽었을 정도. 하지만 이미 끝장난 시리즈라.....
별로 상관은 없는 얘기지만 아카츠키 카케야의 데뷔작인 '너와는 치명적인 차이가 있다'와 개인적으로 상당히 좋아하는 작가인 오토노 요모지의 '내가 사랑했던 모든 너에게&너를 사랑했던 한 사람의 나에게'와는 약간의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요모지쪽 작품에 아인즈바하의 요람이라는게 나오는데 이 '아인즈바하'가 저쪽 작품에서 따온 단어. 뭐 그것 외에는 아무 연결고리도 없지만서도 요모지도 아카츠키에게 사용 허가까지 다 받은 내용.
아카츠키의 작품쪽에서는 '아인즈바하의 문'이라고 나오는데, 아카츠키가 만난 사람중에선 작품 내에 본인이 숨겨놓은 미스테리를 푼 사람은 요모지 딱 한사람 뿐이었다고.
관련 마토메 https://togetter.com/li/536805
뭐 아무튼 이번 '내가 사는 의미'에 대한 뒷이야기는 아랫쪽에.
보기 편하게 약간 수정은 했지만 원본과 크게 차이는 없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크게 나눠서 시리즈 전체의 테마에 대한 이야기와 완결편인 6권 발매 당시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사실 뒷부분만 옮길까 하다가 전반부도 재미있어서 몽땅 가져왔습니다.
아 참, 스포일러가 있기는 할테니(작품을 안 읽어봐서 뭐가 스포일런지 확실히는 모르지만) 읽을 예정이 있으신 분은 주의해주세요.
1. 최근들어 내 작품인 『내가 사는 의미』의 뒷이야기를 할 기회가 많았던 탓에, '역시 그 작품이 그런 작품이었던건지 알고 싶다'는 수요가 있다고 느껴져서, 지금부터 『내가 사는 의미』의 뒷이야기를 한다.
2. 본작은 이능력 패닉 호러로서 세상에 나왔지만, 내 입장에서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고, 실제로는 이능력 배틀로서 쓰고 있었다. 확실히 설명 단계에서는 「패닉 호러 요소를 넣은 이능력 배틀」이라고는 적었지만, 「패닉 호러라고 하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하지 말아달라」고도 전했었다.
3. 그게 무시되고 패닉 호러로서 세상에 나온 탓에, 허겁지겁 「이능력 패닉 호러」라고 내 쪽에서 수정을 한 꼴이 되었다. 편집쪽 입장에서는 「패닉 호러라고 하는 편이 차별감이 생긴다」라고 판단한 모양이지만, 나중에 가서는 「역시 이능력물로 냈어야 더 팔렸을 거 같다」라는 소릴 들었다.
4. 그 부분에 관해서는 단순한 결과론이니까 뭐, 어쩔 수 없지 싶다. 저쪽도 역시 필사적으로 판매하려고 했던 거니까. 단지 독자입장에서는 「패닉 호러」가 가진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위화감을 느낀 사람도 많았을거라고 느꼈다.
5. 아아, 참 그렇지. 우선은 변명을 조금. 본래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이야기하는건 금기로 여겨진다. 하지만 시장에는 뒷이야기를 담은 책도 돌아다니고 있고, TV 같은데서도 감독이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그런건 기본 허용되고 있다. 어째서인가?
6. 내 생각에는,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 => 뒷얘기를 들으면 이득,
작품을 싫어하는 독자 => 변명하지마,
작가로서 =>작품내에서 전달해야 한다,
주위 => 돈벌이에 관한 건 맘대로 적지 마라.
그렇기 때문에 이제 서점에 놓이지도 않는 과거의 작품을 트위터 상에서 이야기 하는건 문제 없다고 생각한다. 마토메 사이트에 대해서도 그런 느낌.
7. 다음으로 작품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본작 『내가 사는 의미』는 메세지성이 강한 테마형의 라노베다. 이건 단순한 내 취미이며 「책을 덮은 후에도 기억에 남는 작품을 쓰고 싶다」라는 내 고집이고, 결코 이쪽이 좋다던가 뛰어나다던가 하는, 낮은 수준의 주장을 하고 있는게 아니다. 작품은 자유가 신조.
8. 『내가 사는 의미』는 어떤 작품이냐 하면,
「산다는 건 악이다」
라는 이야기다. 일반 상식적인면에서 보면 반대가 아닐까 한다. 이런 사고를 「반골기질」이라고 하는 모양이지만 내 작품은 대체적으로 이런 느낌. 아마 라노베 역사상에서도 굴지의 다크 히어로로서의 주인공을 그리고 있다.
9. 패닉호러 작품을 쓰는데 있어서, 「왜 사람은 먹히는 걸 두려워 하는가」하고 나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식사는 많은 생물이 행하는 일상이며, 그로테스크가 아니다. 「뭘 먹을래?」라고 물었다가 「이 악마!」라는 소릴 듣는 경우는 별로 없을테니 말이다. 물론, 식사는 잔혹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없잖아 있다.
10. 식사는 사는데 있어서 필요한 일이지만, 생명을 빼앗는 행위다. 그리고 살기 위해서는 식사만이 아닌, 외적의 배제나, 환경을 둔 다툼도 있다. 다시 말해, 산다는건 많은 생명을 빼앗는 것. 학살이 나쁘다면 사는 것은 악이다. 라는 로직에서 시작하고 있다.
11. 여기서 주인공의 특성에 눈을 돌려본다. 주인공에게 공통되는 능력은 뭐가 있을까? 여러가지가 있을테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야기의 마지막까지는 절대로 죽지 않는 능력」. 도중에 죽어서 나중에 되살아나는 계열도, 마지막까지 죽지 않는다에 포함된다. 여기서, 산다=악이라면, 마지막까지 살아간다=대악인이라는 도식이 성립한다.
12. 『내가 사는 의미』의 주인공의 이름은 「토와(斗和)」영원(永遠)이라는 의미다. 계속 살아가는 능력을 가진다는 건, 누구보다도 많은 생명을 빼앗는 힘이고, 만약 그것이 영원하다면 그 레종 데트르는 「파괴신」과 동일하게 된다. 이것이 본작에서 그린 주인공상이다.
13. 당초는 「어쩔 수 없다」라는 방향성으로 살아가던 주인공이, 점점 자신이 혐오하고 있던 「살인귀」와 동일 존재가 되어 가고, 결국에는 모든걸 파괴할뿐인 개념으로 변한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모든 생물에게는 수명이 있고(없는 것도 있다), 죽음이 설정되어 있다. 하지만 죽을 수 없는 존재라면 그것이 폭주한다.
14. 그럼 여기서 질문입니다. 왜, 모든 생물은 산다는게 악인데도 살려고 하는가? 여기서 느낌이 바로 온 사람도 있을 거다. 그래, 이 작품의 타이틀은 「내가 사는 의미」입니다. 참고로 의미는 「레종 데트르」라고 읽습니다.
15. 나는 이 작품 속에서 세개의 존재개념을 내놓았다. 소마, 프네우마, 프쉬케다. 본작 외에도 들어본 적이 있는 단어 일 것이다. 작중에서는 이런 식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소마=물리층,
프네우마=정신층(데이터),
프쉬케=혼의 층.
16. 작중에서는 「스웜프맨」등의 유명한 사고실험의 예를 내놓고, 「육체가 있어도 혼이 없으면 생명이 아니다. 혼은 아직 해명 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다」라는 걸 적었다. 여기서 본제로 돌아간다. 왜 생명은 산다는게 사악(邪悪)이라고 알면서도, 살아가려고 하는 건가? 죽음이 정해져 있는데도?
17. 소마의 좌(물리)에서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설을 채용하고 있다. 다시말해, 「유전자가 그런식으로 프로그래밍 되어 있으니까」다. 다음으로 프네우마의 좌(데이터). 데이터라고 적었지만, 이건 소설, 영화, 그림, 음악, 지식등을 말한다. 다시말해, 손익계산의 결과가 답.
18. 덧붙여 작중에서도 「프네우마의 좌는 소마의 좌가 존재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라고 적고 있다. PC의 데이터도 HDD가 망가지면 정보를 기록할 수 없다. 따라서, 작중에 나온 「컴퓨터 지성체」도 육체를 가지려 하고 있는 거다.
19. 그럼 마지막, 프쉬케의 좌. 실은 이것만이 본작 중에서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고 있다. 단순히 이야기를 통해 생각해줬음 했던 『내가 사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본작을 마지막까지 읽으면 『내가 사는 의미』를 이해 할 수 있다. 그런 생각 하에서, 이 작품을 썼는데….
20. 뭐 그건 그거고. 『내가 사는 의미』에서는, 그 외에도 「반골기질」성격의 사고가 여기저기 있다. 한가지는 「신은 존재 하는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본작에서는 당초 「신」이라고 불리는 존재가 있고 히로인을 조종하고 있지만, 실은 그게 신이 아니라 다른 생물이었다는게 밝혀진다.
21. 컴퓨터 지성체. 그것이 신의 정체였다. SF 작품 속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그리운 기분이 들 거다. 나도 어렸을 적에 컴퓨터 지성체의 존재를 알고 두근거렸으니까. 아차차, 다시 본론으로. 내가 여기서 적은 건 「초현실적인 존재가 나타났다고 해서, 그게 신이라는 증거가 어디에 있나? 악마일지도 모르잖아?」다.
22. 「신과 만났다」라는 사람이 있어도 「무슨 근거로 그게 신이라고 단정 짓고 있는가?」그 의문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아줬음 한다. 『내가 사는 의미』에서는 신의 존재는 부정하고 있지 않다. 「신은 실재한다」라고 똑똑히 적고 있다. 최근의 진화론이 신을 부정하고 있지 않는 것과 같은 사고이다.
23. 다음으로 『내가 사는 의미』의 배경에 대해. 이 책을 쓰던 당시는 라노베에서는 「모에」의 시장이 강했다. 하지만, 그 외의 것을 바라는 목소리도 있었고, 『진격의 거인』이나 『간츠』『마도마기』등도 유행하고 있었으니까, 라노베에서도 먹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24. 하지만 실제로 본작이 세상에 나온 것은 내가 데뷔작을 낸지 2년 후가 된다. 어째서인가? 담당편집부에 1년 가까이 방치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마, 메일을 해도 무시당하고, 전화를 해도 받질 않는다는 건 이 업계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몰랐다. 쓰면 곧바로 책이 된다. 그런 막연한 이미지를 품고 있었다.
25. 그리하여 미묘하게 어긋난 타이밍에 세상에 나온거다. 「1년만 더 빨랐어도」라는 생각이 없지만은 않다. 다음은 6권에 대해서인데, 너무나도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26.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완전한 변명이고, 추한 문장이 되겠지만, 이미 눈치채고 있는 사람도 있을거다, 본작은 시리즈 중단(打ち切り) 작품이다. 단, 그에 대해 무언가 대책을 강구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전에도 적었던 것 같지만 나는 몇권까지 쓸 수 있는가에 따라, 이야기의 구성을 바꿀 생각이었다.
27. 그런데 본작은 실은 미묘한 판매실적 라인을 형성하고 있었고 솔직히 말해 애니화 된 모 작품보다도 많이 팔리곤 했다. 또한 외국에서 상당히 인기가 좋았고 일본보다도 꽤 팔리고 있었다, 라고 들었다. 아부 수준의 거짓말일지도 모르지만.
28. 그리하여
나는 「어떻게 할까요? 슬슬 복선 회수 할까요?」
담당 「아직은 괜찮아」
라는 대화를 몇번인가 주고받았다. 하지만, 결국 끝날때가 온다. 그건 5권의 플롯을 만들던 시절.
담당 「이 작품은 8권까지 밖에 못나올거에요」.
이 또한 미묘한 라인이었다.
29. 5권부터 복선회수를 시작하면, 일단은 확실하게 다 쓸 수가 있다. 하지만, 테마인 내가 사는 의미에 대해서는 쓸 수가 없다. 그래도 5권에서 복선을 심어놓으면, 내가 바라던 이야기를 쓸 수 있다. 단, 복선회수등은 꽤 아슬아슬하게 되겠다 싶었다. 나는 후회를 하지 않도록, 내가 바란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30. 그리고 5권이 인쇄된 직후 담당에게 연락이 왔다. 「다음 6권으로 마무리 해주세요」. 물론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담당은 이어서 이렇게도 말했다. 「다음권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기뻐해주세요. 그대로 끝나는 작품도 많은 마당에 한권씩이나 복선회수용으로 쓸 수 있으니까요」나는 물론 감사의 말을 전했다.
31. 솔직히 나는, 무리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앞으로 1권으로는 이야기를 제대로 쓸 수 있을리가 없다. 참고로 시리즈 중단의 큰 원인중 한가지가 「이렇게 그로테스크뿐인 작품은 NG」라는게 있었던 모양이다. 그 탓에 6권을 집필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이런 작품이 되게 만들것」이라고 3가지 조건을 받았다. 그 내용은 적을 수 없지만.
32. 나는 그 이야기도 쇼크였고, 「내가 사는 의미」에 대해서 쓰고 있었을텐데, 편집부에서는 「단순한 그로테스크」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던 거다. 모든걸 부정당한 기분이었다. 솔직히 나는 도망치려고 했다. 반드시 실패할 6권을 쓸 바에는 스스로 작가를 그만둬버리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33. 나는 실은, 작품의 끝을 아주 좋아했다. 아무리 도중이 쓰레기라 해도, 제대로 작품이 끝이 난다면, 그곳에는 살았던 증거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 작품이 나온 시기는 「끝이 없는 작품」이 넘치고 있었다. 이후는 영화에서라던가, 완결되지 않은 작품을 애니화 한다던가.
34. 어쩔 수 없는 사정이라는 건 충분히 이해하지만, 나는 불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그 입장에 있다. 아무리 쓰레기라도 완결을 하지 않으면 그건 살았던 작품이 되지 않는다. 그 마음이 내게 6권을 쓸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어차피 가가가에서는 6권의 퀄리티가 좋지 않으면 인연을 끊겠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아무것도 두려울게 없다.
35. 그리하여, 방치하고 있었던 만큼 집필시간은 줄었지만, 노도의 기세로 써내려갔다. 2권은 족히 되는 분량이었다.
나 「마지막이기도 한데 카와카미 미노루씨 같은 두께는 어떨까요?」
담당 「그런 소리는 애니화 되고나서 말해주세요. 하지만 잠깐 교섭은 해볼게요」
36. 담당 「기뻐해주세요. 무려 14페이지나 늘어났어요!」
나 「얏호오오오오오! 2권 분량의 내용을 1권+14페이지로 정리하면 된다는 거네요? 식은죽 먹기죠!」
나는 지나치게 쓰는 편이라 『내가 사는 의미』는 매번 50페이지 정도는 깎아내고 있었다. 깎아내는 건 익숙했다. 오히려 이 날을 위한 복선이었다.
37. 하지만 솔직히, 이 작품은 독자에게 전해지지 않겠구나, 라고도 생각했다. 딱히 독자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렇지 않아도 돌려말하는 소설 표현에서 문자수를 깎아내면 당연히 이미지가 전해지지 않게 된다. 그래도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고 자신을 타일렀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38. 담당 「라스트 신을 다시 써 주세요」
나는 다시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었다. 내가 이 작품에서 가장 쓰고 싶었던, 내가 사는 의미는 이 라스트 신에 집약되어 있다. 이게 있었기 때문에 6권을 쓰려고 정했던 거다. 그걸 바꾸라……고?
39. 담당이 말하길, 이 라스트는 지나치게 어른들용이라서, 라노베 독자에게는 먹히질 않는다. 다들 해피엔드로 끝나는 걸 좋아하니까, 더 뒷맛이 좋은 엔딩으로 해주세요. 당연히 나는 반론했다. 이건 이 작품에게 있어서 가장 깔끔한 끝맺음이고, 그렇게까지 배드 엔딩은 아니다.
40. 지금까지 『내가 사는 의미』를 따라와 준 독자라면 분명히 알아줄겁니다.
담당 「독선적인 소설은 쓰지 말라고 혼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요? 저도 지금껏 이 작품을 읽어온 독자의 한 사람입니다. 그런 제가 NG를 내고 있잖아요」
솔직히, 나는 흔들렸다. 작품은 독자를 위해 존재해야한다.
41. 물론, 담당편집만을 믿을 수는 없었기에, 지금껏 본작을 읽어준 친구들에게도 상담했다. 역시 뒷맛이 약간 나쁘다, 라는 평가였다. 하지만, 마지막이니까 맘대로 하지 그래? 라고도. 망설였다. 마지막이니까 더욱, 자신의 고집을 참아야 하는게 아닐까? 독자를 위해 완결시켜야 하는게 아닐까? 고민했다.
42. 자, 내가 어느쪽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결론에 대해서는, 입장상 「6권을 읽어주세요」라고밖에는 말 할 수 없다. 아마, 읽으면 알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사는 의미』의 뒷이야기에 대해서는, 이걸로 종료입니다. …정월에 한가하죠? 그리고, 또 한 작품 소개를.
42. 6권의 퀄리티가 심각하면 인연을 끊겠다. 라는 소릴 들었지만, 차기작이 나오게 됐습니다. 편집부와 면밀히 상담하고, 라노베를 이해하고 있지 않은 제가 학습을 한 후에 써낸 작품이 이쪽입니다. 『내가 사는 의미』와의 차이를 확인해보는 것도 즐겁지 않을까. 참고로 「남을 믿는다」라는 테마등에서는, 제가 가진 그 맛이 남아 있습니다.
내가 사는 의미는 일본 기준으로는 6권이 2014년 11월 발매, 번역판 기준으로는 2016년 12월 발매네요. 안그래도 발매텀이 길었던 작품이었는데 마지막이 이래서 아마 읽던 사람들은 충격과 공포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에 언급한 새 시리즈는 2016년 10월 발매, 최신간인 2권이 2017년 3월에 나왔는데 반응은 썩 좋지는 않은 모양. 그 이전에 저 지경이 됐는데도 가가가랑 다시 일을 한다는게 여러모로 놀랍기만 합니다. 작가도 그렇고 편집쪽도 그렇고.
최근에 가가가쪽에서 '편집부'를 소재로 한 작품도 하나 낸 이 시점에서 이런 얘기가 나와서 굉장히 묘한 기분. 아직 읽기 전이라 뭐라고는 못하겠지만 그쪽 작품도 작가를 쥐어 짜는게 기본 내용인 모양이라.
마지막으로 최근(?)에 읽었던 작품중에 위와 비슷한 케이스를 다룬 작품이 하나 있었습니다.